김승학 집사의 “떨기나무” 의 시내산에 대해 (1)

김승학 집사의 “떨기나무” 의 시내산에 대해 (1)

김승학 집사의 떨기나무의 시내산에 대해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던 호렙산,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모세가 출애굽한 후 10계명을 받은 시내산이 어떤 산인가 하는데에는 학자들에 따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물론 오래동안 전통적으로 시내산이라고 알려져 온 산은 현재 케터린 수도원이 있는 Jebel Musa, 세칭 모세산이라는 곳이다.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이곳이 아닌 시나이반도 북쪽에 있는 산인 Jebel xxx이 시내산이라고 하는 학자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몇년전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의 주치의(한의사)로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던 김승학 집사가 쓴 떨기나무라는 책으로 인해 많은 성도들 심지어 목사님들까지도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Jebel al-lawz라는 산이 시내산이라고 주장을 하게 되었다.

작년 3월(2008년) 이스라엘 노회를 마치고 성지순례를 하는 동안 그동안 성지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어느정도 안다는 이유로 현지 선교사님의 안내를 받는 동안 동행한 목사님들에게 순례하는 동안 정보를 나눌 기회가 많이 있었다.
어느 목사님이 떨기나무라는 책을 읽었느냐고 물어왔을 때 아직 읽지 못했다고 했더니 그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유를 하면서 떨기나무를 읽으면 시내산이 시나이 반도에 있지 않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꼭 읽어보라고 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존경하는 한 목사님이 “떨기나무를 읽은 후 시내산이 지금의 시내산이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에있다는 것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는 말을 듣고 자료를 준비하여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알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내산의 위치에 대해
시내산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부터 기적적인 탈출을 한 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향했던 목적지였다(출 18:5) 그리고 이 산에서 하나님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었다.(출 19:1-3).

엘리야가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려 찾는다는 말을 들은 후 왔던 곳이 시내산이다.
지난 1600여년동안 순례자와 학자들이 찾았던 전통적인 시내산은 시나이 반도 남부에 위치한 Jebel Musa이며 4세기초 가이사랴의 유세비오는 시나이반도 남단에 위치한 이 산을 시내산이라고 했으며 6세기 중반 로마의 Justinian황제가 이곳에 Catherine수도원을 건축하게 된다.
그러나 Jebel Musa이외에 13개의 다른 산들이 시내산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특별히 사우디에 있는 Jebel al-Lawz라는 산이 시내산이라고 한 것은 Ron Wyatt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원래 마취간호사(Certified registered Nurse Anesthetist)인데 성서고고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노아의 방주와 소돔과 고모라와 시내산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는 1978년 누웨이바에서(사우디아라비아쪽 홍해 서편 시나이반도 동편)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으며 홍해에서 바로의 병거 바퀴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시내산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1984년 그는 두 아들과 요르단 국경을 넘어 사우디 아라비아로 잠입하여 사진을 찍으며 탐사를 감행했으나 돌아오는 길에 적발되어 모든 사진들을 압수당하고 78일동안 감옥생활(이스라엘 첩자라는 혐의)을 하고 석방된다.

1985년 4월에 Wyatt는 Samran이라는 사람의 후원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합법적으로 방문하게 된다. 이번에는 사우디에서 발굴하여 얻는 것의 50%를 Samran과 나누기로 하고 David Fasold라는 사람을 설득하여 그가 가진 Molecular Frequency generator(MFG)라는 탐사기를 동원한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시 애굽사람들로부터 받아 가지고 은 금을 찾으려한 것이다.

그들은 탐사기를 이용하여 금팔지 하나를 찾게 되었을 때 사우디당국에 의해 사우디의 재산을 절취했다는 죄명으로 모든 사진필림과 자료를 압수당하고 사우디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석방되게 된다.
석방된후 Fasold라는 사람은 Jim Irwin이라는 Apollo 15호로 달을 걸었던 우주인에게 이 사실을 말하게 되고 Irwin은 Larry Williams와 전직 경찰이었던 Robert Cornuck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이 사실을 알려주게 된다..

1988년 여름 Williams와 Cornuck은 사우디를 방문하여 Jebel Al-Lawz를 탐사하게 되고 돌아온 후 The Mountain of Moses, The Discovery of Mount Moses(1990)라는 책을 발간하고 후에 The Mount Sinai Myth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판하게 된다.

그러니까 al-Lawz산이 시내산이라는 주장은 이미 1978년에 Ron Wyatt이 했으며 떨기나무라는 책은 Williams와 Cornuck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면에서 볼 때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에 대해 반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이 우리들에게 끼친 영향(잘못된)이 너무나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떨기나무에서 저자 김승학집사가 주장하는 것들을 살펴보며 한 항목씩 검토하며 반박하고자 한다.

<떨기나무>의 저자인 김승학씨는 책말미(398면-406면)에 결론적으로 시나이반도의 시내산이 진짜 시내산이 아닌 9가지 이유와 진짜 시내산이 미디안 광야에 있어야 하는 이유 8가지에 대해 밝히고 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시나이 반도의 시내산이 진짜 시내산이 아닌 9가지 이유(떨기나무 저자 김 승학의 주장)
1. 시나이 반도는 당시에 애굽의 땅이었다.
2. 이스라엘은 이 집트에서 조상들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3. 시나이 반도의 시내산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나이 반도를 지나기 3000여 년 전부터 ‘신(=시나)’라 불렸다.
4. 시나이 반도의 시내산은 기원후 527년 순례객들을 총족시키기 위하여 급조된 성지일 뿐이다.
5. 출애굽해서 십계명을 받기가지 11개월 5일 동안 애굽 땅에 있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6. 애굽 왕자로서 애굽 땅을 잘 아는 모세가 애굽 군인들이 많은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갔을 리는 없다.
7. 시나이 반도는 르비딤과 호렙산 사이다 48km나 덜어져 있어 성경과 다르다.
8. 시나이 반도의 무사산 앞에는 250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다 앉을만한 광야가 없다.

진짜 시내산이 미디안 광야에 있는 8가지 이유(떨기나무 저자 김 승학의 주장)
1.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 땅은 예로부터 미디안 땅이라고 불렀다.
2. 하나님은 구약 식대부터 이미 아라비아와 미디안에 관해서 명명백백하게 구분해 말씀하신다.
3. 애굽 왕자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이고 도망한 곳이 성경에 시나이가 아닌 미디안이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4. 하나님은 모세에게 모세가 살고 있는 미디안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려오라고 말씀하셨다.
5. 홍해를 건너 그들이 수르 광야로 들어가 물을 찾아 사흘 길을 헤매다가 마라의 뜬 물을 달게 마시는 장면을 생각해보라.
6.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분명히 아라비아 사람이요 미디안 땅에 산다고 했지, 시나이에 산다고 한 적이 없다.
7.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과 전투를 벌였다고 했는데, 아말렉족은 미디안 광야 인근에 살던 아라비아인이다.
8. 사도 바울은 시내산의 위치를 아라비아에 있는 산으로 정확하게 기록했다.

먼저 김승학씨가 주장하는 것 가운데 시나이반도의 시내산이 진짜 시내산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 9가지를 한가지씩 검토해 보면 확실히 김승학씨의 주장이 불합리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시나이반도는 당시에 애굽땅이었다는 주장에 대해

김승학씨는 떨기나무에서(398쪽) “애굽에서 탈출하고자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백성이 다시 애굽 영토인 그곳으로 돌아가서 11개월을 살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현재의 지도를 보면 분명히 시나이반도는 애굽의 영토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당시(3500여년전)에도 시나이 반도가 애굽의 영토이었을까?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숙곳을 떠났을 때 애굽을 떠났다(애굽땅에서 항오를 지어나올 때) 라고 기록하고 있다.(출 13:18-20)
당시에는 시나이반도가 애굽의 영토가 아니었다 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고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Flinders Petries는 시나이 반도에 있던 구리광산과 터키광산은 애굽의 국경밖에 위치한 사막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살던 고센땅은 애굽의 동쪽 경계지역에 있던 영토이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숙곳을 떠나오는 그 장면을 출애굽기 기자는 애굽땅에서 항오를 지어나올 때라고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조상들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주장에 대해

시나이반도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의 광야생활 40년의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40년 광야생활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모든 증거들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고고학자인 Dr. Beit-Arieh는 시나이반도에 있는 시내산근처에서 아무런 유적이 발견되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백성들은 토기같은 깨어지는 것들은 가지고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애굽백성들이 준 청동기 그릇을 귀중한 것이니까 소중하게 다루었을 것이며 의복은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헤어지지도 않고 닳지도 않았고 흔적이 될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썩기 쉬운 것들이므로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 시나이반도의 시내산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나이반도를 지나기 3천여년전부터 신(시나)라고 불렸다란 주장에 대해

이 주장은 시나이 반도의 시내산이 모세가 출애굽시 율법을 받은 시내산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

넷째, 시나이 반도의 시내산은 기원후 527년 순례객들을 총족시키기 위하여 급조된 성지일 뿐이다는 주장에 대해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인 헬라나는 전통적으로 시내산이라 인정되어온 것을 확인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이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시내산을 부정할 증거가 되지 못한다.

다섯째, 출애굽해서 십계명을 받기가지 11개월 5일 동안 애굽 땅에 있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

출애굽한 후 홍해를 건너고 마라와 엘림을 지나 신광야를 통과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밑 광야에 들어와서 떠날 때까지 11개월 5일을 있었는데 애굽군사들이 뒤좇아 오는 상황에서 11개월 5일동안을 애굽땅에 있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다.

출애굽한 후 모세는 [출 15:14-16]에서 아래와 같이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열방이 듣고 떨며 블레셋 거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에돔 방백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거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미치매 주의 팔이 큼을 인하여 그들이 돌 같이 고요하였사오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의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

이스라엘백성들을 뒤좇아가던 애굽의 군대들은 홍해에서 수장을 당했다. 주의 백성들이 통과하기까지 이 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돌같이 고요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모든 군대를 잃은 바로가 무슨 용기로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 갈 수가 있었을까?

여섯째, 애굽 왕자로서 애굽 땅을 잘 아는 모세가 애굽 군인들이 많은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갔을 리는 없다란 주장에 대해.

애굽의 군대가 시내반도에 많이 있었다는 것은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이미 서술한바와 같이 시내반도는 애굽땅이 아니었으며 광산이 있었기때문에 애굽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는 것도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명성있는 이짚트학자인 Alan Gardiner에 의하면 애굽의 군대가 시내요새에 주둔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애굽의 군대는 한번도 광산주위를 주둔한 적이 없었고 단지 시내반도 북쪽 지역에 국한되어있었다.

애굽인들이 광산주변을 수비대와 함께 점령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채광하는 인부들만을 보내었고 그것도 매년 채광한 것이 아니라 격년으로 했으며 애굽의 바로 Merenptah때에는 몇년에 한번씩 채광을 했다 (Flinders Petries)

나머지 두 주장에 대해서는 “김승학 집사의 떨기나무의 시내산에 대해 (2)”에서 다룰 것입니다.